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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장보기 리스트를 만들 때 저는 예전에는 필요한 재료를 한 장에 전부 적어 하루에 몰아서 샀습니다. 그런데 살림을 오래 하면서 해보니 한 번에 많이 사는 것이 꼭 시간도 돈도 아끼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냉장고는 꽉 차고 시금치 같은 잎채소는 요리하기 전에 시들고, 집에 간장과 참기름이 있는데 또 사 오는 일도 생겼습니다.
특히 추석 장보기는 평소 장보기와 조금 다릅니다. 갈비찜, 잡채, 전, 나물처럼 한꺼번에 여러 음식을 만들다 보니 필요한 재료가 많고 같은 재료가 여러 음식에 겹쳐 들어갑니다. 양파는 잡채에도 들어가고 갈비찜에도 들어가고, 달걀과 밀가루는 전을 여러 종류 부칠 때 함께 사용합니다. 그런데 음식별로 장보기 리스트를 따로 적으면 같은 재료를 두 번 적어 필요 이상으로 사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메뉴부터 정한 뒤 집에 있는 재료를 빼고, 살 것만 다시 합친 다음 보관 기간에 따라 장보기를 3번으로 나눕니다. 모든 집에서 세 번 장을 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집에서 마트가 멀거나 한 번에 장을 봐야 하는 경우에는 한 번에 사되 매장 안에서 냉장·냉동 식품을 가장 나중에 담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추석 장보기에서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음식의 양보다 ‘혹시 몰라서’ 사두는 재료였습니다.
메뉴부터 안 정했더니 장바구니가 계속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트에 가기 전에 떠오르는 것을 전부 적었습니다. 소고기, 당면,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동태포, 애호박, 두부, 달걀, 밀가루, 과일, 송편을 적고 나면 혹시 부족할까 싶어 대파와 양파, 마늘도 넉넉하게 추가했습니다. 마트에 가면 세일하는 전 재료나 과일까지 더 담았습니다. 그런데 명절이 끝나고 냉장고를 보면 쓰지 않은 채소와 남은 전 재료가 꼭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해에는 순서를 반대로 해봤습니다. 먼저 우리가 실제로 먹을 음식만 적었습니다. 저희 집 네 사람이 명절에 집에서 두 끼 정도 먹는다고 생각하고 갈비찜, 잡채, 전 두 종류, 나물 세 종류, 송편과 과일 정도만 잡았습니다. 국을 따로 끓일지, 친척에게 음식을 받을지까지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메뉴를 정하고 나니 필요 없는 재료가 훨씬 잘 보였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방법은 메뉴 옆에 재료를 적은 뒤 마지막에 같은 재료끼리 합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잡채에는 당면, 시금치, 양파, 당근, 버섯, 고기가 들어가고 갈비찜에는 소갈비, 무, 당근, 양파, 대파가 들어갑니다. 이걸 음식별로 따로 장을 보면 당근과 양파를 각각 사기 쉽지만 마지막에 합치면 ‘당근 2~3개면 되는지, 양파 한 망까지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봅니다. 간장, 설탕, 참기름, 깨, 소금, 식용유, 밀가루처럼 평소 집에 있는 재료가 가장 많이 중복됐습니다. 한번은 처음 적은 장보기 항목이 30개가 넘었는데 집안을 확인한 뒤 간장, 참기름, 설탕, 깨, 밀가루, 식용유, 마늘 같은 것을 지우니 살 것이 20개대로 줄었습니다. 정확한 절약 금액보다 저는 이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또 사는 일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추석 장보기 리스트를 만들 때 첫 번째 할 일은 마트 전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명절 메뉴와 집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세일한다고 먼저 사두면 그 재료에 맞춰 음식을 하나 더 만들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먹을 메뉴를 정하고 그 메뉴에 필요한 양만 삽니다.
가족 수가 적다면 전도 네다섯 종류씩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저처럼 4인 가족이라면 동태전과 동그랑땡처럼 두 종류만 골라도 명절 분위기는 충분했습니다. 반대로 손님이 오거나 음식을 나눠줄 계획이 있다면 양을 늘려야 합니다. 추석 장보기에서 ‘4인 기준’이라는 숫자도 모든 집의 정답이 아니라 실제 몇 명이 몇 끼를 먹느냐를 계산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추석 장을 세 번으로 나누니 시드는 재료가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명절 4~5일 전에 시간을 내서 한꺼번에 장을 봤습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한 번만 들면 되니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금치나 버섯 같은 신선식품이었습니다. 요리를 시작할 때가 되면 처음 샀을 때보다 상태가 떨어져 있거나 냉장고 안에서 다른 음식에 눌려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추석 장보기 리스트를 보관 기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미리 사도 되는 것, 두 번째는 명절 2~3일 전에 살 것, 세 번째는 조리 직전에 살 것입니다. 꼭 정확히 세 번 마트에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온라인 주문과 동네 마트를 섞어도 되고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한 번에 처리해도 됩니다.
먼저 며칠 전에 사두는 것은 당면, 밀가루나 부침가루, 식용유, 간장, 설탕, 참기름, 깨처럼 실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집에 없는 재료입니다. 냉동제품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보관 공간부터 확인한 뒤 미리 사기도 합니다. 송편도 냉동 제품을 이용할 경우 이때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단, 제품 표시사항에 적힌 보관방법이 가장 우선입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비교적 보관이 가능한 무, 당근, 양파, 대파와 과일 등을 삽니다. 사과나 배도 무조건 한 상자씩 사지 않습니다. 차례나 손님상에 사용할 양과 가족이 실제로 먹을 양을 따져 종류별로 필요한 만큼만 고릅니다. 명절 뒤 냉장고에 배가 여섯 개씩 남아 있는 일을 여러 번 겪고 난 뒤 생긴 습관입니다.
마지막 장보기에는 시금치처럼 상태가 빨리 달라질 수 있는 잎채소와 두부, 냉장식품, 생고기, 생선 등을 넣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명절 장보기에서는 냉장이 필요 없는 식품을 먼저 고르고 농산물, 냉장 가공식품, 육류, 어패류 순으로 구매하도록 안내합니다. 냉장·냉동이 필요한 제품이 실온에 있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트 안에서도 순서를 비슷하게 잡습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소고기와 동태포부터 카트에 넣어놓고 한 시간 동안 나머지 장을 보지 않습니다. 상온 식품과 채소, 과일부터 고르고 냉장식품과 고기, 생선, 냉동식품은 뒤쪽에 담습니다. 집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날에는 보냉백과 아이스팩도 챙깁니다.
결국 장보기를 나누는 이유는 마트를 여러 번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재료마다 ‘언제 사는 것이 좋은지’를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트가 가까운 집에는 세 번 나눠 사는 방식이 편했지만, 멀리 사는 집이라면 한 번 장을 보되 냉장·냉동 제품을 마지막에 고르고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냉장고에 넣는 방식이 더 현실적입니다.
4인 기준 리스트는 음식별이 아니라 재료별로 적습니다
추석 장보기 리스트를 실제로 적을 때는 음식 이름 아래 재료를 계속 적기보다 마지막에 한 장으로 합칩니다. 아래는 저희 집처럼 성인 4명이 명절 음식을 두 끼 정도 먹고 갈비찜, 잡채, 전 두 종류, 나물 세 종류, 송편과 과일을 준비한다는 가정으로 만든 예시입니다. 먹는 양과 손님 수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정확한 정량표라기보다 장바구니를 만들 때 빠진 것을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로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고기·생선·두부
- 소갈비 약 1.2~1.5kg
- 잡채용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 약 200g
- 동태포 약 400~500g
- 동그랑땡 또는 완자 재료 약 400~500g
- 두부 1모 - 만드는 전 종류에 따라 제외
채소·버섯
- 시금치 2단 안팎 - 잡채와 나물용
- 고사리 약 300g
- 도라지 약 300g
- 당근 2~3개
- 양파 3~4개
- 무 1개
- 대파 1단
- 표고버섯 또는 잡채용 버섯 1팩
- 애호박 1개 - 호박전을 할 경우
- 마늘 - 집에 있는 양 먼저 확인
건식·냉장 재료
- 당면 약 300g
- 달걀 10개 안팎
- 밀가루 또는 부침가루
- 식용유
- 간장
- 설탕 또는 올리고당
- 참기름
- 소금
- 깨
후식·과일
- 송편 약 800g~1kg
- 사과·배 등 과일 2~3종
- 식혜 등 음료 - 실제 마실 인원만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목록을 그대로 들고 마트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리스트 옆에 ‘집에 있음 / 사야 함 / 받을 예정’ 세 칸을 만들어 체크하면 훨씬 줄어듭니다. 저는 특히 식용유, 간장, 설탕, 참기름, 깨, 마늘은 이미 집에 있는데도 명절이라는 이유로 새 제품을 사 온 적이 많았습니다.
과일도 예전에는 명절이니까 종류별로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손님이 많지 않은 집이라면 한 상자씩 사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 집에 나눠줄 계획이라면 소포장 여러 개가 편할 수도 있습니다. 제품을 고르는 기준도 ‘명절용으로 커 보이는 것’보다 실제 먹을 인원과 남았을 때 소비할 수 있는지를 먼저 보는 편이 낫습니다.
고기나 과일 가격이 평소보다 신경 쓰이는 시기에는 장을 보기 전에 KAMIS에서 소매가격을 한번 확인합니다. KAMIS는 농산물과 축산물 등의 소매가격을 품목과 지역 등에 따라 확인할 수 있어 마트에서 본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비교하는 참고자료로 쓰기 좋습니다. 다만 실제 판매가는 매장과 등급, 행사 여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숫자를 절대적인 최저가로 보지는 않습니다.
명절 음식은 넉넉하게보다 남을 양부터 계산합니다
제가 추석 장보기를 하면서 가장 늦게 바꾼 것이 ‘조금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명절 음식은 부족하면 괜히 마음이 쓰이니 항상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전도 큰 접시 두세 개가 나와야 명절 같았고 잡채도 큰 냄비 하나는 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명절 당일에는 여러 음식을 조금씩 먹습니다. 갈비도 먹고 전도 먹고 잡채도 먹고 송편과 과일까지 먹다 보니 평소 한 끼처럼 한 음식만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결국 냉장고에는 전과 잡채가 며칠씩 남았습니다. 다음 날까지는 맛있게 먹어도 사흘째부터는 가족들이 손을 잘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장보기 전에 사람 수보다 먼저 ‘이 음식을 몇 끼 먹을 것인가’를 적습니다. 네 명이 먹더라도 추석 당일 한 끼만 집에서 먹고 저녁에는 외식을 한다면 준비량은 줄어야 합니다. 반대로 연휴 동안 집에서 계속 먹거나 손님이 여덟 명 오는 날이 있다면 같은 4인 기준 리스트를 사용하면 당연히 부족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간단한 계산은 사람 수에 끼니 수를 같이 붙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4명이 두 끼를 먹는다면 ‘4명 × 2끼’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잡채, 갈비찜을 각각 8인분씩 만들지는 않습니다. 한 상에서 여러 음식을 함께 먹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은 종류가 늘어날수록 한 종류당 양을 줄입니다. 동태전과 동그랑땡 두 종류를 준비한다면 각각 산처럼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은 음식의 보관 공간도 미리 확인합니다. 장보기 전 냉장고 한 칸을 비워두지 않으면 명절 전날 완성한 음식과 생고기, 채소가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냉장고가 꽉 찹니다. 예전에는 장을 잔뜩 본 뒤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순서를 바꿔 냉장고 정리 → 메뉴 결정 → 재고 확인 → 장보기를 합니다.
온라인으로 명절 음식을 주문하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이나 갈비찜을 완제품으로 살 계획이라면 그 음식의 원재료까지 장보기 리스트에 넣으면 안 됩니다. 송편을 선물 받을 예정이라면 미리 사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장보기 리스트 한쪽에 ‘받는 것’도 적어둡니다. 명절에는 평소보다 선물이나 음식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서 이 한 칸이 생각보다 중복 구매를 많이 줄여줬습니다.
지금 제가 사용하는 추석 장보기 순서는 ‘먹을 메뉴와 끼니 수 정하기 → 냉장고와 찬장 확인 → 재료를 한 목록으로 합치기 → 보관 기간에 따라 장보기 나누기 → 냉장·냉동 식품은 마지막에 구입하기’입니다. 장보기 리스트가 길다고 명절상이 더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추석 장은 한 번에 크게 봐야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놓고 결국 버리는 채소와 남은 음식까지 생각하니 꼭 절약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추석 장보기에서 가장 먼저 줄여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혹시 부족할까 봐’ 넣어둔 여분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번에 가득 사는 대신 필요한 날에 맞춰 나눠 사고, 같은 재료를 여러 음식에 같이 사용하도록 목록을 합칩니다. 모든 집에서 세 번 장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추석 장보기 리스트를 ‘무엇을 살까’에서 끝내지 않고 ‘언제 사고, 몇 끼 먹고, 집에 이미 있는가’까지 적어보는 것은 어느 집에서나 한 번 해볼 만한 방법이었습니다.
